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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보고듣기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by 책읽는엄마곰 2021. 8. 3.

 

우리 집 남자들은 장의사나 신부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 마이클은 아버지를 벗어나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한다. 학업성적이 우수하나 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던 마이클은 사제서품을 받기 직전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학과장에게 메일을 쓴다. 마이클을 눈여겨보던 매튜 신부는 메일을 학교에 전달하는 대신 바티칸에서 두 달짜리 엑소시즘 강의를 듣고 오면 다시 의논해 보겠다고 말한다. 로마에서 두 달 보내는 게 나빠봐야 얼마나 나쁘겠냐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는 마이클이 이탈리아에 도착해 퇴마의식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악마의 씐 건지 정신병리학적 질병에 시달리는 건지를 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신부가 아니라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하는 마이클의 가능성을 본 지도 신부님은 루카스 신부를 찾아가라는 요청을 한다. 정파는 아니지만, 수천 번의 퇴마 의식을 행한 전설적인 루카스 신부 역을 안소니 홉킨스가 맡았다.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마이클은 치열하게 고뇌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고 어디까지가 우리의 편견인지, 신부이자 인간으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지. 결국 치료하던 어린 임산부가 사망하자 루카스 신부를 비난하며 떠나려 하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루카스 신부에게 퇴마 의식을 직접 실행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루카스 신부를 마주한 마이클이 악마를 인정하는 장면이다. 설명할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악의 존재 앞에서 사탄을 믿는다, 널 믿으니까 하느님도 믿는다고 말하는 순간. 믿음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 마이클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힘으로 악마를 쫓을 권위를 얻는다. 

믿음과 회의에 대해, 하느님과 사탄에 대해, 인간적인 존재와 영적인 존재에 대해,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하는 우아한 영화다. 목을 뒤로 꺾고 기어 내려오는 엑소시즘적 공포를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이클의 고뇌에 감정 이입하며 따라갈 수만 있다면 단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쉽게 동의하는 건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통을 겪으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의미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위로가 되었다. 신과 종교가 아닌 무수히 많은 인간의 고민을 대입하여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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