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헌트 유나바머] 8편을 연속으로 재밌게 본 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내 눈에 띈 작품이 [주(ZOO)]라는 시리즈물이다.
글로벌생명공학 그룹의 살충제와 사료에 포함된 어떤 성분 때문에 동물들 유전자에 변형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동물들이 더 이상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한다는 설정이다. 아프리카의 초원과 뉴욕의 동물원이 번갈아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재밌고 주요 캐릭터도 다들 매력적이어서 부담 없이 연속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몰랐다, [주(ZOO)]의 B급 정서가 C, D, E 정서로 진행될지,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과 막장 스토리가 연속해서 드러날지 ㅎㅎㅎ 참고로 이 시리즈는 시즌 1은 꽤 인기가 있었고, 시즌2부터 시청률이 떨어지다가 시즌3에서 왕창 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2017년도에 시즌4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아마 다시 촬영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미드를 계속 봤을까? 시즌 1은 재밌었고, 시즌 2는 의아했지만 그럭저럭 볼 수는 있었고, 시즌 3는 뭐랄까... 우리나라 드라마 [보이스] 볼 때 같은 기분이랄까, 오기+의리+어이없음+약간 웃김... 정도의 기분으로 봤다!!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리얼리티와 논리적 개연성은 버리고 간다. 그러나 시즌1과 2는 납득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다른 영화에서 도시 최고 재벌이 마스크 쓰고 날아다니고, 연애하는 기자가 안경벗고 빤스 입고 날아다녀도 못 알아본다는 설정 정도는 익숙하지 않은가 말이다. 미국 최고 재벌천재 토니 스타크가 하룻밤 잠 설치며 홀로그램 좀 만지작대더니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양자역학의 비밀을 풀고, 주먹만 한 보석 목걸이 한 신경외과 의사가 1억 가지가 넘는 미래를 본다고 해도 괜찮았거든, 나 엄청 이해심 많은 사람이거든?! 그러니 시즌 1과 2에서, 뚜뚜뚜뚜 3초 정도 하고 나면 컴퓨터가 답을 다 찾아주고, 비행기 안에 설치된 실험실에서 검체 튜브와 현미경 비스무리한 걸로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세상에 처음 등장한 혼종 동물의 유전적 비밀을 다 밝혀내도 이해했거든?! (극 중 대사로도 나온다. 비행기 내부에서 격렬한 액션신을 벌인 직후, 다 부서져 난리법석인 실내를 바라보며 "괜찮아, 자고 나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을 거야, 우리 비행기에는 승무원도 없는데 신기하지?!"라는 대사를 실제로 주인공 둘이 나눈다^^ 다음 장면에서 원상 복귀된 비행기 실내에서 다시 내용이 진행됨. 귀엽지 아니한가 말이다!)
시즌 1에서는 (2는 세모) 논리와 현실을 버리고 가더라도 중심 스토리와 감정선은 나름 잘 살려서 주인공들의 멜로 라인과 세상의 멸망을 어떻게 막으려는 건지에 대한 일관된 방향성이 있었는데, 시즌 3로 오면 이거 컬트야 뭐야?!
어이없는 걸로 욕하자면 끝도 없다. 사진은 에이브와 다리엘라 커플. 시즌1~2에서 다리엘라가 동료들을 잃고 에이브 팀에 합류하게 되는데 초반에는 반감을 가지다가 뒤로 가면서 로맨스가 싹트고 예상치못한 임신을 하게 되는 과정이 나름 설득력 있게 진행된다. 그런데 시즌 3에서는 에휴... 반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정규 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아프리카 출신 근육질 남성이 10년 사이에 의사 학위를 땄을 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불임인 세상에서 성염색체 관련 연구의 권위자가 되어 있다는 설정까지는 오케이!!
두 사람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다리엘라는 동료의 딸을 나쁜놈에게 넘기며 거래하는데 이 과정에서 애를 구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어쩌고 저쩌고 하며 둘이 싸우다가 애를 찾고 나서는 다시 화해해서 찐한 밤을 보낸다. (대사로도 나옴, 굳이!! "정말 좋았다"라고!) 다음 순간에 비행기에서 애를 키울 순 없다며 모성애를 발휘해 애를 데리고 팀을 떠나더니 IADG(세계 최고 어쩌고 조직)에서 다리엘라를 지상전 최고 능력자(왜? 10년 전 특수요원 팀의 일원이었고 10년간 애 키웠는데?!)라며 초빙하자 바로 세상을 구해야 된다며 애는 혈연도 아닌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집을 떠남. 남편은 다 이해함.
IADG에서 하는 일도 웃김. 여기는 혼란에 빠진 세상을 방어하는 국제방어군 같은 조직의 본부인데, 들어가자마자 다리엘라가 전두지휘함. (나중에 다른 주인공 잭의 여자 친구도 IADG에 들어오는데, 시즌 3 마지막까지 한 번도 언급이 없더니, 갑자기 예전에 IADG였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 하면서 다리엘라와 함께 국제적인 작전을 지휘함). 어떤 식이냐면 도쿄에서 비컨이라는 장비가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이게 가동되면 혼종 괴물들을 유인해서 큰일 나는 설정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래서 IADG가 급히 특별팀을 파견하고, 기기 가동 몇 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팀이 도착함. 대형 기기에는 방어막 같은 게 있어 접근도 어려움. 그러자 화면으로 지켜보던 다리엘라가 "주전원 공급을 끊으라"고 지시하고, 현장의 대원이 굵은 선 같은 걸 끊더니 바로 화면이 화이트 아웃! 지켜보던 IADG 본부 사람들은 담담하게 "방금 우리는 도쿄를 잃었다. 이런 식이면 지구를 모두 잃는 것도 금방이다."는 식의 대사를 함. 뭐지??? 내가 지금 일본 메카닉류의 만화를 보고 있는 건가? 아니야, 일본 만화가들이 얼마나 세계관을 공들여 만드는데!
이렇게 투덜댈거면 뭐하러 봤을까? 근데 묘하게 내 맘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뻔뻔하다니! 이렇게 스토리가 막장인데 주인공들은 나름 매력적이고 각자의 캐릭터를 유지한다. 시즌 4를 왜 취소했는데 너무 잘 알겠는데, 시즌 4를 못 보는 게 아쉽기도 하다. 맙소사, ZOO를 다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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