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자본주의를 읽고 얻은 배움을 좀 더 확장해 보고 싶단 생각으로 전자도서관과 우리 집 책장에서 관련되어 보이는 책을 몇 권 골랐고 제목을 많이 들어본 괴짜 경제학을 먼저 읽게되었다. EBS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와 역사를 쉽게, 아주 쉽고 단순하게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반면 괴짜 경제학은 실제로 우리 주변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어 진행되는지를 경제학을 통해 설명해보고자 하는 책이다.
레빗의 견해에 의하면, 경제학은 해답을 얻는 데 유용한 훌륭한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흥미로운 질문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한 학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야말로 레빗이 지닌 특수한 재능이다.
저자 스티븐 레빗은 주가변동이나 환율의 추이를 전망하여 재테크의 성공을 도모하는 대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예리하고 흥미로우며 때로 어이없는 질문을 던진다. 교사와 스모 선수의 공통점은? KKK와 부동산 중개업자는 어떤 부분이 닮았을까? 그 많던 범죄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부모는 아이에게 과연 영향을 미치는가? (아이를 키우는 중인 부모라면 솔깃할 수밖에 없는 질문임. 이렇게 낚는 것도 레빗의 재능인 듯)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물론, 측정 가능한 데이터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데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저자 스스로도 이를 알고 있다고, 길지 않은 분량의 본문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윤리학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경제학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윤리적으로 이상적인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하려면, 현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먼저 필요하다. 때로는 분석하기 힘든 가치들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아이의 가격은? 잘 양육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측정하는 지표는? 예전에 읽은 거의 모든 것의 가격이라는 책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선택된 가치에 대한 정책을 집행하고 예산을 배정하려면 결국은 수치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사람의 가치를 특정 액수의 금액으로 말하기는 꺼려지지만, 사고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보상금은 특정 금액으로 지불되어야 하며 교육 정책을 정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효용이 측정되어야만 한다. 스티븐 레빗의 데이터 분석은 위의 내용들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까지는 아니라도, 측정 가능한 수치들의 상관관계를, 때로는 기존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흥미로운 상관관계들을 보여준다.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이며 일하는 여성이기도 한 입장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다섯번째 챕터, 완벽한 부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에 대해서만 일부 소개해 볼까 한다.(엄마가 되고 나니 모든 책이 육아서로 읽힌다.) 1990년대 후반 미 교육부에서 유치원에서 5학년까지 2만 명이 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동 성취도 발달에 관한 장기적 연구'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연구를 위해 학생들의 학업성적, 기본적인 정보(인종, 성별, 가족 구성,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 부모의 교육 수준)를 조사하고 학부모, 교사, 학교 운영진과의 인터뷰도 실시했다. 인터뷰 내용에는 체벌을 가하는지, 한다면 얼마나 자주인지, 아이들을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데려가는지, 아이들이 TV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 등의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나왔고, 레빗은 이를 분석할 수 있었다.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에 따라 많은 걸 알려주는 데이터였다.
아이의 인성이나 창의력과 같은 가치들은 매우 중요하지만 측정이 어려우므로 학업성적과의 연관성을 분석해 본 결과 다음의 항목 중 여덟가지가 성적과 강력한 - 양일 수도 음일 수도 있다-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나머지 여덟 가지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인과관계는 아니다. 닭이 먼져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복잡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상관관계는 숫자로 입증 가능하므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다/ 가족 구성이 온전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 최근에 주변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가 출생 당시 저체중아였다/ 아이가 영세민 자녀를 위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에 다녔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간다/ 입양된 아이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다/ 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한다/ 아이가 TV를 많이 본다/ 집에 책이 많다/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항목도 몇 가지 있지만 그런 항목을 제외하더라도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답이 무엇인지는 안 안려드려요, 궁금하시면 책 읽어보세요^^ 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자녀의 좋은 학업성적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려있을까,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일'이 중요할까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부모는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부모들이 자녀 양육 책을 집어 드는 시기 이전에, 이미 오래전에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결정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와 결혼을 했으며, 어떤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만일 당신이 머리가 좋고, 근면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봉급도 많고, 당신만큼이나 운이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면, 당신의 아이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데이터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여기까지다. 레빗의 분석이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는다는 한국사회에 가득한 피해의식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금수저는 당연히, 금수저를 낳고 키울 확률이 높다. 높은 IQ는 유전되며, 좋은 교육을 받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양육된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읽는 레빗의 이론을 다시 읽어야 한다. 학업성적이 성공인가, 어떤 삶이 좋은 곳에 도달했는지 나쁜 곳에 도달했는지 당신은 무엇을 보고 평가할 것인가? 수치화할 수 없었던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과 인간관계는 어떠한가. 인터뷰와 설문으로 부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다만 평소의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은 부모가 양육을 통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아이를 키우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는 거다. 무서운 이야기다. 나 자신은 부족하지만 내 아이는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리가 그 많은 육아서를 읽고 돈과 시간을 들여 '무언가 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위에 인용한 데이터분석 외에 레빗이 소개한 연구를 하나 더 언급해야 될 것 같다. 입양된 아이와 그들의 수양부모, 그리고 친부모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반적인 짐작대로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친부모보다 보통 머리가 더 좋고, 교육 수준이 더 높으며, 수입이 더 높다고 한다. 하지만 수양부모의 이점은 아이의 학교 성적과 거의 관계가 없었단다. 즉, 수양부모가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유전의 힘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단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입양된 아이가 성인이 되자 이들은 IQ만으로 예정되었던 운명을 급격히 벗어났다. 비슷한 상황에 있으면서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들은 대학에 가서 보수가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적으로 20대에 결혼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은 수양부모의 영향이다."
요약하자면 이 책을 중요한 두 가지 이야기를 전달한다. 첫번째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통념에 사로잡혀 있었나 하는 부분이다. 전문가 집단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스티븐 레빗의 장난스럽기까지 한 문제제기가 의미를 가지는 건, 너무 당연해 보이는 사실들이 어쩌면 틀릴 수도 있다는 의문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범죄, 안전, 양육과 교육에 대한, 극히 이상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일수록 감정에 어필하는 고정관념에 휩쓸리기 쉽다. 단지 받아들이기 쉽다는 이유로 잘못된 인과관계를 맹신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들인데 말이다. 두 번째는, 인센티브의 중요성.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분석해 보는 것으로 행동의 원인을 찾을 수 있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게끔 이끌 수도 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할 개념이다. 거기다 덤으로 복잡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어떤 식으로 선별하고 비교해서 흥미로운 결과를 찾아내는지에 대한 팁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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