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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둘뿐이다 - 책 읽던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by 책읽는엄마곰 2020. 10. 22.

책 읽는 게 너무 즐거워 하루 종일 책만 읽었던 초등학교(국민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 종종 생각난다. 120권짜리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이 집에 있었고, 읽었던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것 같다. 엄마가 방문판매 아저씨에게 60권씩 두 번에 나눠 할부로 사주신 책이었다.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던 나는 학교를 마치면 잠들 때까지 집안에서 동생과 노는 게 제일 재밌었다. 딱히 학원도 다니지 않던 초등학교 시절엔 방학을 하면 하루 종일 여동생과 집에서 놀았다. 미미인형인지 바비인형인지를 상자 가득 가지고 있었고 옆동네까지 사온 50원짜리 종이인형이 잔뜩 모여 있었지만 이런저런 놀이가 시들해지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동생과 놀지 않는 시간에는 내내 책을 읽었다. 하루는 길고 시간은 늘 남아 돌았다. 햇살이 들어와 환한 방바닥에 엎드려 뒹굴대며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어스름해지고는 했다. 나의 아깝고 귀한 시간을 투자해 읽을만한 책인가, 등의 생각은 떠올리지 못하는 나이였다. 그 무렵에 읽었던 책 속의 풍경, 절벽 위에 선 라스트 모히칸의 비장한 모습과 설원 저 멀리 보이는 은색 늑대의 모습이 지금도 그릴 듯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 둘뿐이다는 우연히 집어들이 읽기 시작했다. 짧은 분량의 청소년 소설이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괴짜라고 불리는 똘똘한 소년과 약삭빠른 아이들의 꼬봉 역할을 하는 머리 나쁜 덩치가 서로를 싫어하다가, 우연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 함께 빠져나오는 이야기이다. 명쾌한 구성에 군더더기 없는 내용,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그래서 별로였냐고? 아니, 예상외로 굉장히 즐거운 독서였다. 읽으면서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떠올렸다. 당시 내 방에 꽂혀있던 책들과 미닫이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다 점점 사그라지던 풍경이, 평온했던 기분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 시절을 떠올려도 슬프거나 후회되거나 못 견디게 그립지는 않을 걸 보니 지금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그 무렵 내 부모의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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